quit

저는 제 갈 길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드디어 퇴사날. 내가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퇴사를 준비하며 겪은 일들을 적고 나중에 내가 퇴사하거나 입사할 때 참고하려고 한다.

퇴사 결심

왜 퇴사를 결심했는가?

피드백의 부재와 성취감 없는 업무

일이 쉽다. 이게 오해하면 안 되는 게, 내 역량의 50-60%만 내서 일함에도 불구하고 피드백은 커녕 오히려 주변에서 우쭈쭈 해준다. 나도 코드 리뷰도 받아보고 혼나도 보고 싶은데, 피드백이 일절 없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걸 진짜 제대로 하는지도 모르겠고, 일에는 성취감이라곤 일절 없었다. 내 생각에도 “와 이건 진짜 잘했다.” 싶은 게 한 개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테스트 오픈을 하고 메일로 피드백을 요청했으나, 단 한 건도 오지 않았다. 이후 약 2주가 지나 오픈을 하고 나니, 주간 회의 때에 피드백이 그제서야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표님께도 내가, 팀장님이 합쳐서 세 차례나 메일로 문의를 한 게 있었는데, 내내 답이 없었다가 그때가 되니 입을 여셨다. 팀장님께서는 왜 그 때 메일로 답을 안 줬냐고 물었는데, 대표님께서는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말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직원이 이런 식이니 답답했다.

바뀌지 않는 조직

내 팀은 SVN, 이클립스 등, 팀장이 여지껏 업무해 온 스타일을 따랐는데, 문제는 그 기술들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편리한 것이 있음에도 그걸 사용해보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Git은 이런 장점이 있고, IntelliJ나 Vscode로도 스프링부트 작업 되고 저런 장점이 있고를 말해봐도 팀장님은 항상 “내가 어려워서”, “나중에 하자”라는 말로 넘어갔다. 만약 “지금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의 이런 성격과는 맞지 않아서 쓸 수 없다.” 같은 식으로 근거가 있었다면,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저 담당자인 거 맞죠?

홈페이지 프로젝트의 담당자 이름으로 내가 올라갔는데, 내가 담당자인 거 맞나 싶을 정도로 회의에서 배제되었다. 신입이기도 하고 괜히 회의 나가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럴 거면 그냥 담당자에서 이름을 빼든가.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지만, 팀장님께서 전부 다 하셔서 불만이 많았다. 나도 할 수 있는데.

경영진과 실무진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경영진이 실무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는데, 그러면 실무진의 의견에 귀를 귀울여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우리 팀은 전부 백엔드를 하는데, 우리 팀에 와서 회사 홈페이지 리뉴얼을 A to Z까지 맡겼다. 당연히 팀장님은 “디자이너도 없고, 기획자도 없고, 퍼블리셔도 없다. 안 된다. 아니면 사람을 지원해달라.”고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팀 컴퓨터 잘하니까 다 되는 거 아니야?” 같은 논리였다) 결국 다 전담하게 되었다.

프론트엔드 포함 대부분의 작업을 내가 했는데(아마 80% 정도) 대표님의 승인을 받은 기획서 그대로 만들었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안 예쁘다고 퇴짜맞고 프로젝트는 엎어졌다.

경영진은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고, 실무진들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인사에 대한 불만

솔직히 내부적으로 가관이었다. 퇴사자는 거의 매 달 까지는 아니었지만 많으면 한 달에 3명이 나가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인사공고가 올라왔다. 인사 과정도 “왜 나는 사원 이상의 일을 하는데 아직도 사원에 월급도 인턴처럼 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실력과 능력에 따라 승진한다더니 그냥 대표님께 예쁨 받으면 올라가는 인사제도였다. 목표치 이상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승진을 못 하고, 성과가 없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보니 이게 누가 봐도 자명할 정도로 너무 눈에 띄었다.

닫혀버린 성장의 기회

이게 제일 큰 이유였다. 다른 건 다 그냥 참고 넘어갈 수..있나? 뭐 어쨌든, ‘피드백의 부재와 성취감 없는 업무’, ‘바뀌지 않는 조직’, ‘저 담당자인 거 맞죠’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내가 1년을 딱 채우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려고 여지껏 내가 했던 일들을 적어보는데, “과연 이런 걸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1년을 땅바닥에 내던진 거 같은 기분이 들며 그 시간이 매우 아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식대요? 알아서 드세요

식대 없다. 이게 크게 안 와닿을 수 있는데, 매일 점심 값으로 거의 만원씩 나간다 치자. 주 5일이면 대략 한 달에 20일이라 치면 달마다 20만원씩 나가는 것이다. 이거 은근 크다.

포괄임금제

이거 진짜 거지같다. 내가 만약 이직을 하는데 거기서 포괄임금제라고 한다? 바로 난 빤스런 할 것이다.

포괄임금제랍시고 상여금도 안 준다(기술팀은 줬다. 몇 십 만원…). 나는 그래서 무조건 야근하지 않고 18시 내로 일을 끝내고 간다는 마인드로 일했다(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컴팩트하게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전 직원 준다고 빵 같은 거 사오지 말고 그 돈으로 상여금을 주든지, 자원 투자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많은 회의

이건 내가 직접 겪은 불만은 아니지만,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팀장님께서 매주 월(주간회의), 목(팀장회의)을 회의에 참석하러 가시는데, 팀장회의는 주간회의의 반복이고 거기서 겪은 답답한 것들을 사무실에 들어와서 푸신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는 주간회의에 전직원이 다 참석해야 했는데, 들어가서 보면 회의라기보다는 보고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 보고를 하는 현장도 서로 책임 회피하고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사람이 혼나는 일이 잦았다. 한 마디로 배울 게 없는 회의였다. 아, 그래도 다른 팀이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퇴사 과정

1차 면담

퇴사 의사는 2주 전에 밝혔다. 원래는 퇴사 의사를 말하고 1주일 뒤에 나가려 했으나, 홈페이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어서 1주를 더 연장했던 것이었다(사실 완성은 했지만, 본사 측의 피드백과 결정 사항도 확실해진 게 없었다).

팀장님께서는 웃으시다가(실성한 거 같았다) “오랫동안 고민한 거겠지.” 하시고는 별 말씀 안 하셨다. 그리고 대표님께 직접적으로 내 퇴사 소식을 전달하셨다.

그러고 좀 이따가 과장님으로부터 메신저로 차 한 잔 하자는 얘기가 왔고, 카페를 가는 길에 잠깐 얘기를 나눴다.

과장님께서는 “회사에서 원래 잡는 게 맞는데, 뭐가 있어야 잡죠.”라고 하셨는데 이거 너무 진심 같았다. 그리고 이미 내가 마음을 바꿀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계셨고, 뭔가 팀장님께서 나가봐라 하셔서 나오신 것 같았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왜 그만두는지, 앞으로 뭘 할 건지를 얘기했고, 과장님으로부터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응원을 받고 1차 면담을 마무리했다.

사직서 제출

퇴사 의사를 밝히고 1주 후, 대표님으로부터, 인사팀으로부터 아무런 얘기도 없길래 그냥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를 밝힌 그 주에 과장님께서 대표님께 내 퇴사 소식을 말했고, 인사팀도 알음알음 안 눈치라서 딱히 인사팀에 전달을 안 했는데 이게 실수였다.
인사팀은 확실하지 않아서 퇴사 처리 준비를 안 한 상태였는데, 내가 사직서를 내니 준비 시간이 많이 모자른 것 같았다.
대표님께서 자꾸 말을 전달하지 않고 삼켜버리시는데, 당연히 인사팀에 말씀을 안 하셨던 것이었다. 그냥 과장님께 “음 알았어요. 인수인계 잘 받으세요 ^^” 하고 말았다 한다.

인수인계

어찌저찌 사직서를 내고 인수인계를 해야했는데, 소스코드는 이미 SVN에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수인계서를 작성해서 넘겨드렸다.
인수인계서에 작성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담당자 이름 및 연락처
  • 작성일, 전달일
  • 소스코드 관리
  • 구현된 기능
  • 구현해야 할 기능
  • 로직의 위치
  • 빌드 방법
  • IDE 설정법

나중에 또 인수인계 작성할 일이 생길테니 알아두자. 그리고 나중에 이력서 쓸 때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과장님께서 “이렇게까지 쓰는 사람 없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하실 정도로 세세하게 적었다. 일 관련해서 연락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깔끔하게 끝내면 서로 좋으니까.

소스코드도 다 백업해서 NAS에도 올렸다. 전부 그냥 다 백업하고 커밋하고 해놨다. 이제 일 관련해서 연락하지 말라는 뜻이다(강조).

2차 면담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원들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본인들도 기간 다 채우면 퇴사할거라고 한다. congratulations
(진짜 저 반응이었다.)

퇴사 전 팀장회의가 있는 날, 비타500이랑 박카스를 사고 본사로 가서 미리 인사를 드렸다. 인사팀으로부터 퇴사 안내도 받고, 자회사 분들과도 인사하고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여기는 퇴사한다 하면 다들 축하해준다. 와ㅏㅏ).
자회사 분들과 카페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팀장님으로부터 대표님 미팅이 있으니 미리 가서 인사드리고 오라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잠깐이면 되겠지 싶어서 잠시 다녀온다고 하고 회사로 다시 들어갔다.
전 대표님께서는 미팅이 있어서 짧게 인사만 하고 끝났는데, 전 대표(현 자회사 대표)님께서는 아예 본인 사무실로 불러서 얘기를 하려고 하셨다(이때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순탄하지가 않네…

다른 건 다 문제도 아니고 저 전 대표님과의 면담이 문제였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 네 커리어가 꺾이는 거 같다.
  • 패배자의 길로 들어서는 거 같다.
  • 네가 가려는 프로그램(42서울, 프로그램명은 말하지 않았다) 그거 정부 돈 빼먹기만 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곳 아니다.
  • 너에게 조언해 주는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어서 너한테 해보라고 막 말하는 거다. 너를 아끼는 사람이면 본인들 회사로 데려가야 했을 거 아니냐.
    • 나: 채용비리잖아요 그거.
    • 전 대표: 그게 무슨 채용비리냐.
    • 나: (아 그냥 나가고 싶다)
  • 네 성격은 창업을 해야 할 성격이다.
  • 창업을 하면 돈을 끌어와야 하는데 필요 시 사채도 써야한다.
  • 네가 말하는 거 나도 안 해본 거 아니다.

등등 이 얘기를 한 시간 반 동안 듣고 있었다. 처음엔 열 받아서 반박도 했는데, 얘기가 계속 길어지다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자회사 분들께 죄송해서 나중에는 그냥 영혼없이 들었다. 저래놓고 마지막에는 “너 같은 애 없다.”하면서 나중에 다시 스카웃하겠다고 하셨다(어림도 없지). 그리고 위협인 것 같기도 한데, 전 대표님께서 “주변 친구들 다 이름 있는 IT업계 고위급이니까 도움 필요하면 말해라.”고 하셨다.

진짜 지쳐서 그냥 듣는데, 다행히도 다른 팀에서 내 서명이 필요하다고 전화가 와서 2차 면담이 끝났다(감사합니다!).

다른 직원 분께 저 대화 내용을 말씀드렸고, 이전 퇴사자들의 얘기를 쭉 들었다. 저 대화 패턴은 이전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패턴이었다. 그냥 퇴사자들한테 다 저 말을 하나보다.

퇴사

사직서 결재도 끝났고, 인수인계도 슬슬 끝나가고 드디어 기다리던 퇴사날이 되었다. 과장님께서 “슬슬 나와서 점심 먹고 얘기 좀 하다 가면 된다.”고 하셔서 10시 20분 정도에 출근했다.
짐 정리는 내가 워낙에 뭘 늘어놓고 하는 성격도 아니라, 그냥 키보드, 마우스, 명함, 인공눈물 정도만 챙겨서 왔다. 다음사람이 와서 쓰기 편하게 쓰레기통도 비우고 대충 청소도 하고 노트북 잠금장치도 초기화시켜놨다.
짐 정리가 끝나고 대략 30분 동안은 잠깐 멍 때리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마지막으로 밥 먹고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퇴사를 하며 챙겨 온 것

인사팀에서 아무래도 퇴사 통보를 갑작스럽게 받아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 서류는 퇴사 이후에 받기로 했고, 나중에도 더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다.
받기로 하거나 이미 챙겨 온 서류는 다음과 같다.

  • 원천징수영수증
  • 경력증명서
  • 급여명세서
  • 인수인계서

말고는 뭐… 없었다.

그래도 이건 좋았다

다른 건 몰라도 아랫 직급끼리의 사이가 상당히 좋았다. 서로서로 챙겨주고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있었다(윗 직급에 쌓인 게 많아서 그런가).

그리고 팀장님에 대해서는 다른 건 몰라도 근태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유로우신 분이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출근 늦어도 상관 없고(한 번 배아파서 늦은 적 있었는데, 개의치 않아 하셨다), 점심시간 때 더 쉬어도 되고, 일찍 퇴근도 시켜주시고 등등 일만 제대로 한다는 전제 하에 출퇴근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이야, 좋았던 거는 두 가진데 싫었던 거는 아홉 가지야

앞으로 주의할 것

내 감을 좀 믿자.

면접 볼 때부터 채용 공고에 올라왔던 거랑 다른 얘기 할 때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때 런했어야 했다.
제발, 다음부터는 제발 이상하다 싶으면 가지 말자 좀. 알바 때도 당해놓고 한 번 더 당하네.

만약 이 글을 보고 내가 나중에 회사 지원한 곳에서 나를 탈락시킨다면, 난 오히려 좋을 것 같다. 이 내용을 비난하는 곳에는 어차피 오래 못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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